산문

[스크랩] `예수, 무함마드를 만나다` 에 대하여

할로태산 2012. 12. 3. 18:02

 

예수, 무함마드를 만나다대하여

 

 이교수님의 쓰고 있는 위 제목의 글을 읽고, 그 시각과 글의 방향에 대하여 간단히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국제정세에서 심각한 분쟁지역 그리고 잠재적인 불씨들은 드넓게 분포하고 있다. 그곳들 중에 예수, 무함마드를 만나다에서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리적으로는 팔레스타인지역의 문제를 현안으로 보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위 팔레스타인지역의 문제를 문명의 충돌이라 진단하고 그 배후에는 종교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또, 이라크와 미국의 충돌을 종교전쟁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그래서, 위 두 종교의 진정한 메시지를 이해해야 평화와 공존 그리고 상생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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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문명이라는 단어의 정의부터 내려져야 한다.

 1993년 헌팅턴교수가 쓴 문명의 충돌이라는 아주 유명한 논문이 있다.

 

문명(civilization)이라는 개념은 18세기 프랑스 사상가들이 야만의 개념과 반대되는 뜻으로 발전시켰다. 19세기 독일의 사상가들은 기계, 공학, 물질적 요소와 결부되어 있는 문명과 한 사회의 가치관, 이상, 지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는 예술적, 윤리적 특질과 결부되어 있는 문화(culture)’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그러나 문화와 문명을 구분지으려는 노력은 폭넓은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

문명과 문화는 모두 사람들의 총체적 생활 방식을 가리키며, 문명은 크게 씌어진 문화인 것이다.”

 

문명을 가장 광범위한 문화적 실체로 정의한다면, 종교는 문명을 가르는 수많은 기준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필자가 자란 집안 환경은, 아버지는 기독교인으로 그러나 어머니는 불교도라는 서로 다른 종교를 지향하지만 한국이라는 환경속에서 별탈 없이, 오히려 다양한 종교를 향유할 수 있는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랐다. 한국의 문화에는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으로 시작되어서 불교, 유교, 기독교, 이 모든 종교를 포함한다.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빼서는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전부가 우리 것, 한국의 문화이다.

한국에서 기독교인 많다고 해서 한국을 기독교문명이라 부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보다 더 큰 한국의 문화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지역의 문제를 종교간의 갈등으로 진단 내리는 단순한 발상은 현실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고, 그 문제를 조금 깊게 들여다 보면 종교는 그야말로 표면적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함마드는 이미 예수를 만났다.

코란은 성경의 모든 교리를 철저히 파악한 후에 설하여 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예수 이후, 7세기의 무함마드는 기독교의 교리를 흡수해서 토착화 시켜나갔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종교는 그 자체가 개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문제시 되는 것은 광신(Fundamentalism)이 폭력을 수반할 경우이다. 어느 종교이든 광신은 존재한다. 그러나 또 어느 종교이든 광신은 넓고 길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20세기의 또 하나의 종교국가 이스라엘의 존재는, 종교는 사랑과 평화가 아닌 긴장과 전쟁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역의 문제가 종교를 넘어선 문명간의 충돌로 당사자들이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 이미 그렇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종교는 사람들을 규합시키고 이념을 주는 훌륭한 도구로 사용된다. 미국은 이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문명 전체와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도마 안중근의사는 한국에서는 영웅이고 일본에서는 한 명의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안중근의사는 천주교를 위해서 몸을 바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조국을 위해서 살신성인하였다.

 

미국건국의 영웅들,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존 애덤스(John Adams),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ton),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등은, 당시 영국의 천인공노할 반역자들이었다.

 

이들은 불합리성을 발견하고 억압받는 민중들을 위해, 과감하게 자신의 뜻을 펼쳐 나갔기 때문에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지역에서 무슬림들은 이제 더 이상 일개 집단의 원리주의자들이 아니라 미국의 침략에 맞서는 당당한 영웅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이런 명분을 준 것은 미국이다.

 

이라크는 패배가 확실하지만, 거국 미국의 침략에 자신의 주권을 위해서 응전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은 어리석은지는 모르지만 미국과의 타협, 즉 미국의 종(slave)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적당히 타협해서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인간은 단순한 경제적인 동물이 아니다.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욕망과 이성, 그리고 패기(Thymos)가 있다. 무슬림들도 자신의 판단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을 존중 받고 싶어한다.

 

 정의를 위해서라는 명분아래 이라크에서 미국해병대가 쓰러뜨린 사담후세인 동상은 별 의미가 없다. 이와는 상반되게, 구 소련 시민들은 스스로 레닌 동상을 쓰러뜨렸다. 한국의 많은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압정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과 마찬가지로 변방의 일개 작은 나라는 나라의 주권을 국제정세의 흐름에서 얻어왔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에는 독립 기념일이 없다. 우리 손으로 통일이 된다면, 그 날이 진정한 독립 기념일이 될 것이다. 

 

미국과 이슬람권과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팔레스타인에서 무슬림이 존재하는 한, 그들은 무슬림 권력층에게 유린당한 인권보다는, 미국에 의해 짓밟혀진 자신의 국토와 민중들을 잊지 않을 것이고, 역사가 계속되는 한, 목숨을 건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현대사에서 국제관계의 패권주의는 그 시작부터가 종교와 관계가 없었고, 오로지 물리적 힘()만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 시키는 유일한 증거이다.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국가들의 처절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석유의 땅 중동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현재로써는 부시행정부가 임기를 끝내고, 다음 민주당 정권이 중동방향을 유연하게 쓴다는 것이 가장 낙관적인 전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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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의 대화의 장에서,

교리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현실에서 사람들이 성서, 코란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교만 중에 하나이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또 하나의 가르침이 된다. 성숙한 대화란 당신은 이래야만 한다는 자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제일 잘 이해하고 있고, 또 그들의 생활방식이 아닌 곳에 그것을 강요한다. 또 미성숙하고 약한 문화를 소유한 나라들은 그것을 최고로 알고 일방적으로 따라 한다.

 

 

마지막으로, 종교와 교리의 상관관계를 잘 표현한 글을 소개한다.

 

“There is Dhamma in Buddhism but there is no Buddhism in Dhamma.”

 

 

출처 : 코리안아쉬람
글쓴이 : akles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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