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스크랩] Re:Re:예수, 공자를 만나다 23 : 글을 마치며

할로태산 2012. 12. 3. 18:13
언제나 애정 어린 지적에 감사를 드립니다. ^^ 기꺼이 받아 들입니다. 하지만, 좀 '문자적'인 해석에 치우치는 것 같습니다. 이미 동양이라 하면, 과거에 서양인의 눈으로 동양을 재단 했다고 하지만, 이미 학계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동양'은 하나의 지형적으로 보편화 되었습니다. 예를들면, 서울대학교 출판사에서 나온 교과서 <세계 문화사>를 펼쳐 보십시요. 거기에 동양의 문화사와 서양의 문화사를 대별해 두고, 고대의 오리엔트 문명과 서양의 문명사적 발전과정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황하문명도 분명히 동양의 문화사로 편입되어 설명하고 있지요. 예컨대 하나의 새로운 보편적 개념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new 16:15

님의 논리 대로라면, '지중해(地中海, mediterian sea)' 또한 서양인의 잣대로, 지구의 중앙에 있는 바다라는 뜻인데, 그게 어디 말이 될법한 말입니까? 그러나 이미 학계에서 일단 '지중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고 누구도 그 '명칭'에 대해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찬 가지로 오늘날 '동양'을 말함에 있어서 중국을 배제한다면 그 또한 말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new 16:09

'약소국 이스라엘'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이미 솔로몬(기원전 약1000년경) 시대 이후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탄생 했습니다.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 라는 나라이지요. 그것이 흩어진 민족으로 살아 오다가 근래에 와서 독립을 보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역사를 공부하면 당연히 과거와 오늘의 이스라엘을 말하지요. 이를테면, Hstory of Isreal 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현대적 독립국가의 이스라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와 북 이스라엘 전체를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그 점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애정어린 지적 감사드립니다. new 16:19
 
 
 
 
 
 
 
 
 
 

논점이 흐려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부연설명을 하겠습니다.

 

1.     먼저, 예수시대(헬레니즘)의 동양과 서양이라는 개념과 현재의 개념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혼동하면, 뒤죽박죽이 됩니다.

 

BC 4세기에 마케도니아 출신인 알렉산더(Alexandros the Great, BC 356~BC 323.6)대왕이 정복전쟁을 나서서 인도까지 접근을 했습니다. 이것은 아테네문화(희랍문명)으로 세계가 통일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처음으로 동서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비로서 동서 문명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당시 서양(occident)에서의 동양(orient)은 현재의 중동지역입니다. 물론 알렉산더의 영향으로 인도까지 포함되기도 합니다.

 

서양의 구분은 대비적인 것입니다. 동양만이 따로 존재할 수 없고, 서양만이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시대의 중국을 동양의 강국이라 표현한다면, 중국과 대비되는 서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자시대에는 그런 교류가 전무했습니다. 따라서 공자시대의 중국을 동양의 강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동양의 개념에 중국이 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보편적인 것입니다.

 

 

2.     알렉산더 이후에 로마문명이 등장을 합니다. 로마문명은 고대문명으로는 특이하게 절대군주제가 아닌 공화제(republican)를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에 의한 통치가 아니고, 집단통치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헬레니즘문명을 계승 한 로마는 줄리어스 시저 이후 안토니우스를 거치면서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황제가 됩니다. 그래서 권력이 황제에게로 집중이 되기 시작합니다.

 

일인 군주제로 권력이 집중이 되는 시기에 예수는 태어났습니다. 이처럼 로마의 통치가 군사화되고 위압적인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은 완벽한 식민지였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유대인들은 항상 독립을 향한 염원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독립국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유대의 舊約전통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구약에 따르면, 최초의 유대왕국은 다윗이 돌팔매로 블레셋(팔레스타인)의 골리앗을 죽이고, 다윗왕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최초로 유대의 성전을 만들게 됩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성전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의 압제를 받을 때마다, 다윗이 그리운 것입니다. 이것을 메시아 대망사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메시아 대망사상이 팽배했을 때 예수는 등장을 합니다.

 

요셉프스에 의하면, 당시에는 예수 같은 인물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당시의 열성당원(zealots)들은 자신들이 신에게서 선택 받은 민족(chosen people)임을 강조합니다. 여기에는 계약에 의해서 규정된 민족이라는 강한 프라이드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집트(에굽)의 파라오의 압제로부터, 모세라는 선지자를 주축으로, 홍해를 가르고 시내광야를 40년 헤매면서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왔다는 역사를 강조합니다. 따라서 로마의 압제에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AD70년에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은 로마군에 의해 박살이 납니다. 다시 유대인들은 방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AD135년에는 유대인들이 다시 크게 독립전쟁을 펼쳤으나, 역시 로마군에 의해 초토화가 됩니다. 이로써 유대의 나라는 완전히 멸절이 되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까지 긴 세월 동안 유대민족은 나라가 없었습니다.

 

헤롯대왕(유대인)이 지은 예루살렘성전(3번째 성전) AD70년에 파괴가 됨으로써 유대민족들은 약2000년간을 나라가 없는 민족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간단하게 유대민족의 역사를 예수시대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 역사를 기반으로 했을 때, 예수의 시대를 약소국 이스라엘이라고 표현 하는 것은 전문적인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로마의 압정에 시달렸던 유대민족에게 근대적인 국가라는 개념이 통할 수 없습니다. 근대 민족국가의 개념은 훨씬 후에 등장합니다.

 

History of Israel』라는 문구가 곧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다윗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신라의 역사, 고려의 역사, 조선의 역사도 다 한국의 역사안에서 해석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와 현재, 현재에서 과거를 볼 때는, 그 당시의 논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논리가 지금과 다를수록 역사는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급히 쓰느라 오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계속되는 좋은 토의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 코리안아쉬람
글쓴이 : akles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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