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학2학년 마치고 인도로 가서 뭔가를 얻을 때까지 인도에 머무르자, 그렇게 친구 한 놈하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대학2학년이 되었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나도 학교생활에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그러나, 결국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 기말고사를 앞두고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인드라간디 공항에서부터 인도 특유의 냄새가 진동을 했고, 나는 적잖이 놀라면서도 그 신기한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기말고사에 맞춰 15일짜리 왕복비행기표를 끊고 갔지만, 인도에서 더 머물러도 좋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유명관광지만 다닌 탓도 있었고, 느긋하지 못한 성격 탓에 날짜에 맞춰 어김없이 나는 다시 인드라간디 공항으로 돌아왔다.
대학에 가서 무사히 기말고사도 치렀고, 대학졸업 후에는 회사에 취직도 했다. 타고난 방랑벽인지 회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싫어져서, 회사에서 얻은 경험과 인프라를 이용해서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경이라는 대도시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사회구성원 각자가 톱니바퀴를 구성해서 거대한 쳇바퀴를 돌리는 듯, 답답하기만 한 것은 여전했다.
대학 때의 15일간의 인도여행으로 얻은 자신감으로 7년이 넘는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인도로 왔다.
그렇다 인도로 온지 벌써 2년째가 넘어가고 있다. 델리대학 불교학과에 적을 두고 있지만, 인도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행으로 보내고 있다.
친구들에게는 당당하게 도 닦으러 간다고, 그래서 인도로 간다고 선언하고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명상센타로 시작하여 히말라야 수도승들을 두루 만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소위 말하는 영적인 탐구를 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나도 모르게 따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리쉬케쉬에서 좀 떨어진 조용한 아쉬람에서 어렵사리 산중턱에 기거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적이 있다. 나뭇가지로 얽어 만든 작은 집에서 명상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작은 노트하나를 발견했는데, 몇 년 전 여기에 머물렀던 미국인이 쓴 거라고 나중에 아쉬람 구루지가 말해주었다. 그 미국인 친구는 그 집에서 3년을 머물렀다고 한다.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일년째는 자신의 미친 마음과 미친 채로 보냈고, 이 년째는 침묵으로 보냈고, 삼 년째는 자유를 찾았다고 했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올 줄 알고 노트에다 글을 남긴 것 같았다.
핑계이겠지만, 그 집에는 수도가 없었다. - 그래도 물과 밥을 날라다 주는 반다리라는 스무살짜리 청년이 매일 나를 돌보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 십분 정도를 산에서 내려가서 계곡에 가서 폭포를 맞으며 샤워를 했다. 그러나 평소 물장난을 좋아하던 나는 계곡에 가면 점심때까지 물속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다. 좋은 공기와 물, 나는 휴양을 온 건지, 수행하러 왔는지 나 자신이 너무 해이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딱 이주일 머물고 학교공부 마치면 다시 오겠노라 하고, 그 미국인 친구가 얻은 자유를 뒤로 한 채 산을 내려왔다.
나는 다시 다른 아쉬람, 다른 구루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주어진 나의 길에 진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길을 찾는 사람도 어차피 길을 가고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인도의 여름이 다가오고, 나는 또 배낭을 챙겨야 한다.
대학2학년 마치고 인도로 가서 뭔가를 얻을 때까지 인도에 머무르자, 그렇게 친구 한 놈하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대학2학년이 되었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나도 학교생활에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그러나, 결국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 기말고사를 앞두고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인드라간디 공항에서부터 인도 특유의 냄새가 진동을 했고, 나는 적잖이 놀라면서도 그 신기한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기말고사에 맞춰 15일짜리 왕복비행기표를 끊고 갔지만, 인도에서 더 머물러도 좋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유명관광지만 다닌 탓도 있었고, 느긋하지 못한 성격 탓에 날짜에 맞춰 어김없이 나는 다시 인드라간디 공항으로 돌아왔다.
대학에 가서 무사히 기말고사도 치렀고, 대학졸업 후에는 회사에 취직도 했다. 타고난 방랑벽인지 회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싫어져서, 회사에서 얻은 경험과 인프라를 이용해서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경이라는 대도시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사회구성원 각자가 톱니바퀴를 구성해서 거대한 쳇바퀴를 돌리는 듯, 답답하기만 한 것은 여전했다.
대학 때의 15일간의 인도여행으로 얻은 자신감으로 7년이 넘는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인도로 왔다.
그렇다 인도로 온지 벌써 2년째가 넘어가고 있다. 델리대학 불교학과에 적을 두고 있지만, 인도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행으로 보내고 있다.
친구들에게는 당당하게 도 닦으러 간다고, 그래서 인도로 간다고 선언하고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명상센타로 시작하여 히말라야 수도승들을 두루 만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소위 말하는 영적인 탐구를 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나도 모르게 따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리쉬케쉬에서 좀 떨어진 조용한 아쉬람에서 어렵사리 산중턱에 기거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적이 있다. 나뭇가지로 얽어 만든 작은 집에서 명상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작은 노트하나를 발견했는데, 몇 년 전 여기에 머물렀던 미국인이 쓴 거라고 나중에 아쉬람 구루지가 말해주었다. 그 미국인 친구는 그 집에서 3년을 머물렀다고 한다.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일년째는 자신의 미친 마음과 미친 채로 보냈고, 이 년째는 침묵으로 보냈고, 삼 년째는 자유를 찾았다고 했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올 줄 알고 노트에다 글을 남긴 것 같았다.
핑계이겠지만, 그 집에는 수도가 없었다. - 그래도 물과 밥을 날라다 주는 반다리라는 스무살짜리 청년이 매일 나를 돌보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 십분 정도를 산에서 내려가서 계곡에 가서 폭포를 맞으며 샤워를 했다. 그러나 평소 물장난을 좋아하던 나는 계곡에 가면 점심때까지 물속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다. 좋은 공기와 물, 나는 휴양을 온 건지, 수행하러 왔는지 나 자신이 너무 해이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딱 이주일 머물고 학교공부 마치면 다시 오겠노라 하고, 그 미국인 친구가 얻은 자유를 뒤로 한 채 산을 내려왔다.
나는 다시 다른 아쉬람, 다른 구루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주어진 나의 길에 진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길을 찾는 사람도 어차피 길을 가고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 인도의 여름이 다가오고, 나는 또 배낭을 챙겨야 한다.
출처 : 코리안아쉬람
글쓴이 : akles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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