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평 남짓한 기숙사 방, 내 침대 밑에 부시가 잠자고 있습니다. 가끔 몸이 간지러운지, 자면서도 다리로 몸을 박박 긁습니다. 좀더 자주 목욕을 시켜야 하겠습니다. 얼마 전 히말라야에서 돌아온 나와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이 있었고, 더욱 늠름해진 태도로 기숙사 안팎을 휘젓고 다닙니다. 오늘은 평소 영역싸움으로 사이가 안 좋은 옆 상점의 라덴(실명 오사마 빈 라덴)의 귀한쪽을 거이 물어뜯어 버렸습니다. 나는 평소 라덴하고도 친한 사이라, 처지가 난감했지만. 상점주인도 개들 싸움이라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아서 라덴에게 비스켓 한 봉지 사주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름은 ‘조지. W. 부시’ 하도 내 말을 안 듣는 꼴 통이라, 내가 그렇게 명명했습니다. 중동 쪽을 비롯한 각국의 학생들은 대체로 그 이름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세계 30여 개국에서 온, 100명 남짓한 학생들이 사는 국제학생기숙사, 역시 인도만의 풍경을 자랑합니다. 식당에는 항상 몇 마리의 개와 고양이들이 진을 치고 있고, 그라운드에 가면 창공을 나르는 매, 까마귀, 나무에는 다람쥐들, 울타리 밖을 의젓하게 걷는 소들, 특별히 누가 돌보는 사람 없이도 잘 지내는 것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돌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힌두신들이 돌봄 속에서 안주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변함없이 잘들 살아갑니다.
인도에서는 사람들도 바쁘게 살지만, 소나 개들도 인간들에게 별 의지함 없이 자기들 생을 살아갑니다. 더 이상 진지할 것도, 신기해할 것도 없이, 그저 다 같이 이 허무의 강을 건너고 있을 뿐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들입니다.
인도에서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은 인간들의 가엾은 자존심일 뿐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칼 쿠스타프 융은 책에서 아래의 취지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서구의 외향적인 문화가 많은 악습을 척결할 수 있음은 사실이고 또 그것이 바람직하며 이로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경험이 보여 주듯이 이 과정은 영적인 문화의 상실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진행된다. 잘 정돈된 위생적인 집에서 사는 것이 더 편안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주지는 못하며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영혼도 마찬가지의 질서와 청결을 누릴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
“인간의 외면적인 삶은 분명히 나아질 수도 있고 미화 될 수도 있지만 내면에서 그만큼 나아지거나 미화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물론 생활 필수품을 모두 갖춘다는 것은 행복의 기초이며 그것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넘어서서 어떠한 외면적 대상으로도 만족될 수 없는 요구를 들고 나온다.”
무의식의 혼돈과 자기 조절의 결핍 속에서 스스로를 상실해 가는 인간성에 대한 적나라한 경고입니다.
인도에서는 긴 전통에서 우러나오는 조화로운 공존의 평화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철학자는 철학적 소질이 없는 사람은 상식이나 나이 또는 국적에 의한 습관적 신념에 의해서, 혹은 신중한 이성의 협력이나 동의 없이 마음속에서 자라온 확신 등으로부터 유래하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평생을 보낸다고 하며, 습관적 신념이나 전통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평정하고 비개인적이고 순수하게 사색적인 지식을 추구하면서 사물을 볼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자신이 신이 되어 살아가는 것 보다, 신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쪽을 택했습니다. 힌두 철학이 결코 종교라는 울타리 밖을 넘어서지 않는 것은, 그 근원이 신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힌두 사상체계는 그 역사적 권위를 인정 받고 있지만, 그 내용들의 목적은 철학적인 독창성을 추구하는데 있다기 보다는, 신에 대한 회의의 반대, 내지는 그러한 생각들의 방어논리들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괴로운 철학적인 사색이나, 허무는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신도 맡은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종교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에 게으른 사람이 없듯이, 인도사람들이 게으르다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닙니다.
거기에 신이란 것이 없다면 이라는, 가정은 진정 인도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만한 위력이 있어야 하지만, 인도에서는 그것은 한낱 철학의 사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연 그들은 종교가 철학보다 크고,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논리가 논리를 위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신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는 힌두문명의 중심축인 신의 위력을 아니 느낄 수 없습니다. 인도에서는 말합니다. “왜 네가 신의 짐까지 짊어져서 비틀거리느냐고”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나의 객기와 오만은 신 따위는 무시해버리지만, 인도에서는 진정 인간의 행복이란, 겸손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저녁 때는 부시를 데리고 라덴 병문안을 가봐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부시는 만사 귀찮다는 듯이 코골며 잠만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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