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스크랩] 인도에서는

할로태산 2012. 12. 3. 17:56

인도에서는

 

오늘은 야무나(서울의 한강) 강가로 나가봤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누군가가 火葬되어 가고 있었고, 하얀 포자기에 쌓인 아기는 水葬되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강태공이라 불러도 되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오랜 풍파를 이겨낸 강한 어부들이라는 느낌이 맞을 겁니다.

불과 지면으로부터 50센티미터 밑에 묻혀있는 아이들 무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강가에서, 특별히 경건한 마음을 굳이 밖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죽음은 인도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드려 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는 것 자체도 자연스럽게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딸을 출산하면 지참금의 공포 때문에 갓난 아기를 살해한다고, 그래서 야만적이고 생명을 경시한다고 하는 記事화되는 말은, 문화적인 상대성을 이해 못하는 편파적인 시각 일뿐입니다. 인도에서는 삶이란 전체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어둑어둑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새 소는 내 곁을 걷고 있었습니다. 개와 산책하는 기분과는 또 다른 느낌, 나중에 꼭 소를 구해서 산책을 데리고 다니리라 다짐했습니다.   소를 타고 다녔다는 여러 성자들의 기분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인도에서는 발가벗고 길을 다니는 수행자도 메르세데스 벤츠와 코끼리가 나란히 교통혼잡에 잡혀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획일화되어 있는 것은 ‘신 앞에 경건하다는 것’뿐입니다.

 영화 “City of Joy” 에서 딸이 시집을 가는 날 아빠가 딸을 껴안으며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신이 나에게 잠시 빌려준 선물이란다. 이제 나의 곁을 떠나 행복하게 살아다오”

 그가 딸을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신이 빌려준 고마운 선물로 애지중지 하며 키웠던 그 심정을 잘 표현한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져 한국신문지상에 나열되는 자살사건들은 인도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도사람들보다 더 궁핍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경제적인 富의 척도로 인간의 행복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진부한 경구이지만, 인간은 단순한 경제적 동물이 아니기에, 하루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이들의 집에서도 가족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들려 오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구걸하는 거지들도 당당합니다. 구걸하는 쪽은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할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적선할 기회를 주니, 서로 대등한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神의 不在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곧 신이 인도를 지탱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신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신과의 조화를 모색하려는 나도 있습니다.

 

출처 : 코리안아쉬람
글쓴이 : akles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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