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이론
11. 유식사상의 윤회
우리는 이제까지 주로 초기불교시대[1]의 윤회이론을 살펴보았다. 이제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윤회를 이야기 해보자. 우선 소승과 대승의 차이를 잠시 살펴보고, 유식사상에서의 윤회이론을 짚어 보도록 하자.
대승운동은 보살[2]사상과 간다라[3]와 마투라[4]에서 나온 佛像이 합쳐지면서 세력이 크게 확장된다.
대승불교의 핵심 키워드(key word)인 보살사상은 수행중심의 아라한[5]개념과는 다르게,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든 생명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계율의 엄격성보다 부처의 자비를 갈구하고, 자신들이 불성을 具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불멸 후 약 500여 년 간은 불상이 없었다. 이 시기를 탑(stupa)[6]중심의 無佛像時代라고 한다. 그러나 불상이 나타나면서 불교가 우상숭배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때 나타난 사상이 반야사상[7]이다.
소승과 대승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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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Theravada) |
대승(Mahaya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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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자 중심: 비구(bhiksu),비구니(bhiksuni) |
재가신도, 일반신도 중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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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중심(dharma): 계율 |
신앙중심(sraddha):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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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중심: 비형상주의 |
불상중심: 유형상주의 |
소승은 출가자 집단의 진리와 계율중심었고, 대승은 재가신도들의 불상중심으로 믿음과 신앙심을 강조한다. 그래서 대승은 부처에 대한 귀의, 삼보에 귀의라는 신앙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한다. 대승불교의 연장선상에는 정토신앙[8]까지 등장하게 된다. 淨土宗은 의타종교의 하나로써 깨달음(구원)은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絶對他力을 강조한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의 재림설과 비슷한 맥락의 신앙형태도 대승불교에 존재한다. 그것이 미륵신앙[9]이다. 결국 대승운동은 소수의 엘리트(vyakarana)중심의 소승불교에서 벗어나 대중종교로 거듭나는 과정의 역사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舊約중심(계율중심, 민족중심)의 종교에서, 예수가 新約이라는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면서 구약을 타파하는 과정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는 모든 존재를 空으로 인식하고, 執着을 버릴 것을 다시 강조하는 반야사상의 등장
으로 새로운 轉機를 마련한다.
空(sunya)[10]은 원시불교에서는 諸法無我(sarva-dharmah niratmanah)로 불려 졌고, 대승불교에서 空이라고 한다. 반야경의 空을 잘 정리해서 풀어 놓은 것이 용수보살의 『中論』[11]이다. 『중론』에 의하면 우리의 대상세계는 緣起의 假合상태로 인정된다. 즉 대상세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진제(paramartha-satya)와 속제(samvrti-satya)로 나뉘고, 공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眞空妙有[12]라고 표현한다. 즉 『中論』은 緣起와 無我라는 불교의 근본교리를 재확인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식사상으로 넘어가면서 空의 실재성은 여지없이 사라진다.
唯識(vijnapti matrata)사상은 요가행(yogacara)[13]을 닦는 사람들의 선정체험에서 나온 실천적 이론이다. 唯識은 문자 그대로 일체의 존재는 개인의 識(마음)이 만들어낸 환영(maya)이고, 오로지 識만이 사물적 존재로 인정한다.
유식사상은 중관파[14]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二大思想을 형성한다.
우리는 華嚴經의 ‘三界唯心’ ‘心如工画師, 画種種五陰’ 이라는 句에서 유식사상의 源流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부파불교시대의 阿毘達磨師(理論家)와 瑜伽師(實踐家)라는 부파 중에서 유가파가 유식사상을 형성해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식사상은 반야의 空사상을 이어받으면서도, 마음의 작용을 유일한 존재로 본다. 마음상태를 瑜伽行을 통해 컨트롤 내지는 변화시켜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이것은 色(matter)은 그저 마음작용에서 생겨난다는 것으로 唯心論과 동일하게 봐도 된다. 그러나 불교는 마음 그 자체도 실체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마음상태를 부정한다. 결국 유식론과 유심론은 결코 유사하지 않은 상반된 개념일 수밖에 없다.
이제 유식에서 말하는 복잡한 인간의 마음의 상태를 살펴보자.
앞장에서 우리는 識이란 6根(감각기관)과 6境(감각대상)이 만나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 보았다. 유식에서 말하는 八識論은 아래와 같다.
①
② 耳識(청각)
③ 鼻識(후각) 前五識(five senses)
④ 舌識(미각)
⑤ 身識(촉각) 심층
⑥ 意識(mano vijnana) – 위의 5識을 統覺 하는 또 하나의 감각기관으로 意가 설정되었고, 인식대상인 사건(法)과 만나서 생겨난 識이 意識(consciousness)이다. 판단과 추리(推理)등 이른바 知性이라 할 수 있다.
⑦ 末那識(manas vijnana) – 마나스(manas)는 意라고 번역된다. 意는 생각이라는 뜻으로 항상 ‘나’를 고집한다. 제6識과 구분하기 위해 音寫됐다. 제8識을 자기라고 생각해서 집착을 계속하는 識이다. 개념적 사유보다 더 근원적인 강력한 자기동일의식이다.
⑧ 阿賴耶識(alaya vijnana 藏識) – 마음의 심층부분이다. 알라야(alaya)의 어원은 住居, 장소의 뜻으로 여기에 一切諸法을 발생시키는 種子를 內藏하고 있기 때문에 藏識이라고 번역되고 있다. 그래서 一切種子識이라고도 한다. [15]
제1識부터의 5識까지의 나열에서 보이는 것처럼, 가장 명백한 것처럼 느껴지나 실은 가장 저급한 識, 즉 에러(error)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識의 順으로 정리가 되어있다. 저급하다는 것은 迷妄의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 된다.
유식 사상은 인간의 의식을 파고 들어가서,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을 철저하게 분석 정리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발견한 무의식(The unconscious)층은, 불교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연구가 됐고 또 이것은 초월대상에 불과하다.
유식사상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제8識으로 결론 내린다. 제8識은 의식의 심층바닥에 있는 것으로 제7식까지의 모든 현상을 일으키는 근원이다. 그러므로 모든 원인(種子 bija)를 저장하기 때문에 藏識이라고 한다.
유식에서의 아뢰야식은 無始부터 無終까지 쉼 없이 相續된다. 이 아뢰야식에 위의 모든 식작용이 薰習(vasana)되어 輪廻가 계속된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모든 행위는 種子인 아뢰야식을 훈습시킨다.
그래서 이 알라야식(Alaya Consciousness)은 無始以來의 훈습의 결과이고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불교는 궁극적으로 藏識 또한 無名識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妄識은 결코 긍정할 수 없는 苦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전환시켜 반야의 지혜를 이룩하는 轉識成智가 유식사상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불교는 윤회라는 苦에서의 해방을 추구하는 종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유식사상에서도 우리의 意識을 넘어선 곳에 있는 阿賴耶識이 윤회를 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전생을 기억하거나 볼 수 있는 이론은 없다[16]. 그리고 미래의 生은 현재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불교는 운명론이나 숙명론으로 해석 할 수 없다. 불교의 윤회이론은 미래에 관해서는 현재가 중요할 뿐이다. 미래에 좋은 곳에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으면, 지금 좋은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이 괴로운 것이라면 과거의 業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희석시키기 위해 더욱 좋은 일에 매진(邁進)하면 된다.
오늘은 유식사상의 전부를 말하지는 못했으나, 유식사상에서의 윤회이론을 짚어보았다.
다음에는 윤회이론을 정리하면서 글을 끝내도록 한다.
[1] 불교의 역사적 진행상황을 편의상 학자들이 구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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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Early Buddhis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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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本佛敎 -부처의 생존시기 |
原始佛敎 -佛滅 後 약 100년간의 분열 前 시기 |
部派佛敎(小乘佛敎) -상좌부,대중부등으로 갈라지는 시기 |
[2] 보살(Bodhisattva) - 보디(bodhi)는 budh(깨닫다)에서 파생된 말로 깨달음, 지혜라는 의미이고, 사트바(sattva)는 존재하다(as)가 어원으로 생명이 있는 존재, 즉 중생(衆生) ·유정(有情)을 뜻한다. 보살의 일반적인 정의(定義)는 ‘보리를 구하고 있는 유정으로서 보리를 증득(證得)할 것이 확정된 유정’ ‘구도자(求道者)’ 또는 ‘지혜를 가진 사람’ ‘지혜를 본질로 하는 사람’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따라서 보살의 개념에는 출가승과 재가신도의 구분이 없다.
[3] 간다라(Gandhara) - 인더스강 중류에 있는 파키스탄 페샤와르 주변의 옛 지명. 희랍문화의 영향으로 神을 형상화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4] 마투라(Mathura) -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도시.
[5] 아라한(Arhan) - 더 이상 배움이 필요 없는 무학위의 존경스러운 사람. 성문, 독각의 이상. 그러나 아라한위는 佛位가 아니다.
[6] 탑(stupa) - 아쇼카왕이 8만 4천개의 스투파를 세워 부처의 뼈를 돌 속에 감추어 두었다는 기록이 우리나라 『삼국유사』 “遼東城育王塔”에도 나온다.
[7] 반야(prajna)사상 –『大般若經-Prajuaparamita sutra』에 정립된 사상이며, 초기불교의 반야 개념을 새롭게 정립함으로써, 본래 불교의 팔정도를 6개로 개념화시켰다. 형상주의, 초월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기원전후세기부터 생겨난 사상으로 일체평등의 지혜이며 바라밀의 완성이다.
[8] 淨土信仰 – 아미타불(Amitabha)의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성불할 것을 주장하는 신앙형태. 왕생의 방법에는 염불(念佛)왕생·제행(諸行)왕생·조염불(助念佛)왕생·문명(聞名)왕생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정토신앙에서는 염불왕생을 중시한다. 때문에 이른바 육자진언(六字眞言)인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기만 해도 서방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 정토신앙은 불교 대중화를 위한 최고의 수단으로, 현재도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신앙 형태이다.
[9] 미륵신앙 -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후 56억 7천만 년 후에 도솔천으로부터, 이 세상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강한다는 미래불의 신앙.
[10] 空사상 – 空(sunya-sanskrit, sunna-pali)의 순야(sunya)는 ‘집에 사람이 없는’ 이나 ‘왕국에 왕이 없는’ 의 문장에서 사용되는 단어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인도 수학에서는 0(zero)를 의미한다. 이 단어를 초기대승불교의 論師들은 불교사상의 핵심을 표현하는 述語로 본 것이다.
[11] 『中論』 - 중론(Madhyamakasastra)는 용수보살(Nagarjuna)의 대표적인 저작. 반야경전이 말하는 空의 의미를 처음으로 분석한 본격적인 論書이다.
[12] 眞空妙有 – 진실의 空은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고, 바꾸어서 훌륭한 존재라고 하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대승불교의 세계관.
[13] 瑜伽行唯識學派(yogaacaara) – 彌勒(maitreya)가 開祖이고, 형제인 無着(asanaga)과 世親(vasubandhu)이 유식敎義의 이론적정합성과 체계화를 정립했다.
[14] 中觀派(Madhyamika) - 용수보살(Nagarjuna)를 開祖이고 반야경의 空사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운데를 배우는 자’라는 뜻의 학파명은 『中論』에서 유래됐다.
[15] 天台宗은 여기에 하나 더 보태서 九識, 眞言宗은 더 보태서 十識을 말한다.
[16] 불교의 윤회를 말할 때, 부처의 본생담(jataka)에서 나오는 부처의 전생 이야기나, 目連經에서 지옥에 빠진 목련의 어머니를 건지는 일화등이, 마치 현생에서 전생을 볼 수 있거나 미래에 어떤 존재로 태어날 것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러나 불교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연구해보면 불교 어디에도 그런 설명은 하고 있지 않다. 위 두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일 뿐이고, 목련경이 경우는 僞書로 보는 학자가 더 많다. 그러나 위서라고 해도 그 내용이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많다고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반형이상학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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