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스크랩] 무아와 윤회의 문제 samsara 10

할로태산 2012. 12. 3. 18:10

윤회이론

 

10. 무아와 윤회의 문제

 

우리의 텍스트 중 하나인 잡아함(13,335)에서는, “업과 그 과보는 있지만 그것을 짓는 자는 없다.”(有業報而無作者)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업을 짓는 자는 누구이고, 업의 결과인 과보를 받는 자는 누구인가?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는 것은 과보와 윤회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는 모순되는 두 요소를 토론거리가 아닌, 사실 속에서 나타나는 객관적인 확인이라고 설명한다.

 

불교신자들은 위 문제를 신앙의 신조로 받아드려서 넘어가도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위 문제는 부처의 사후에 교단분열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고, 그 만큼 불교도들의 치열한 연구성과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무아와 윤회의 문제를 우선 텍스트에서 그 설명을 찾아보자. 그리고 불교를 꼭 학문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읽기 귀찮은 독자들은 그냥 넘어가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주요 참고문헌인 윤박사의 박사논문을 정리해 보도록 한다.

 

 

     푸드갈라 Pudgala

우리의 텍스트 중 잡아함에서 부처는 五蘊을 무거운 짐에 비유하고, 그 무거운 짐의 짐꾼을 푸드갈라 pudgala(士夫)에 비유를 한다. 우리는 앞의 오온의 설명에서 우리라는 존재는 5온의 假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푸드갈라는 5온 이외의 다른 존재의 등장으로 혼란이 야기된다.

일부 학자들은 짐꾼의 비유를 들어서, 5온과 구별되는 실체적인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5온은 그 자체이며, 5요소의 배후에서 를 느끼는 다른 존재 즉 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自我가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한다. 푸드갈라가 업을 짓고, 윤회하고, 과보를 받고, 열반에 이른다. 그러므로 푸드갈라가 실체이고 자아라고 한다.

그러나 부처 자신이 자아(atman)을 부정했기 때문에, 푸드갈라를 단순히 실체적인 자아라고 정의 내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푸드갈라 지지자들은 푸드갈라를 다섯 요소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雜種理論을 주장한다.

5온이론에서 가 아니다. 그리고 , , , 가 아니지만 또 그것들은 와 다르지도 않다.

잡아함에서는 이것을 연꽃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꽃의 향기는 연꽃에서 나온다 그러나, 연꽃은 줄기나 뿌리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따라서 꽃의 향기는 연꽃 자체와 분리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꽃 뿌리에서 연꽃 향이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푸드갈라는 5온과 같은 것도 아니지만, 다른 것도 아닌 것이다.

 

 

     (vijnana)

우리는 앞에서 인간의 感覺器官(6)認識對象(6)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6근과 6경이 만나서 발생하는 것을 이라고 하는 정신작용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은 고정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고, 순간적이고 지나가는 정신현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이 은 영혼이나 (atman)처럼 하나가 아니고 기본적인 6개이다.

 

 

6

6

眼識

耳識

鼻識

舌識

意識

 

 

그러나 우리의 텍스트에서 을 단순하고 일시적인 정식적 형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윤회의 주체로 볼 수 있는 확실한 구절들이 있다.

그 구절들을 윤박사는 윤회주체의, 증거의 가능성으로 제시를 하고 있다.

 

가)   인간이 受胎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첫째는 부모가 한곳에 모일 것, 둘째는 이 어머니 태에 들어갈 것, 셋째는 출생 때까지 이 母胎를 떠나지 않을 것 등이다.

나)   의 간청에 의해서 釋提桓因은 천상에서 수명이 다 끝나가는 수부티(subhuti 須菩提) 천자에게 그의 識을 왕비의 胎에 내려가게 해서 그 왕의 아들로 태어나도록 요청한다.

다)   열반을 얻기 전에 죽은 사람의 魔羅가 잡아갈 수 있는 것으로 말한다.

 

이상의 텍스트에서 발췌한 증거로 윤박사는 은 우리들의 감각기관인 六根과 그 대상인 六境과 관계없이 혼자서 존재할 수 있는 증거로 제시한다. )와 나)의 경우처럼 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의 경우처럼 魔羅가 잡아 갈 수 있으므로, 어떤 크기를 가지고 있다고 추론한다.

또 부처와 사티(sati)의 대화에서 우리 텍스트의 아이러니를 학문적으로 짚고 있다.

 

그 내용은, 사티라는 비구가 나는 세존께서 저 세상에 나는()것은 지금의 이 과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설법하시는 줄 안다라고 다른 비구들에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해 들은 부처는 그를 불러서 어떤 것이 인가라고 묻는다. 사티비구는세존이시여, 이른바 이 이란 말하고, 깨달으며, 스스로 짓고, 남을 짓게 하며, 일어나고, 같이 일어나는 것으로서, 여기저기서 선하고 악한 업을 지어 그 갚음을 받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부처는 너 어리석은 사람아, 나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너는 완전히 그런 말을 하는구나라고 꾸중을 한다. 그리고는 이란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 있으면 생기고 이 없으면 멸한다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대화의 끝부분에서 부처는 사티비구에게 인간이 受胎하기 위해서는 영혼과 같은 존재인 간다르바(中陰衆生 gandharva)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윤박사는 아함경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 六識으로서의 영혼과 같은 것으로서의 사이에 어떤 구별이 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아함경에서는 常住不變하고, 에서 다른 으로 윤회하는 영혼 또는 自我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음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윤박사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대승의 유식사상까지는 주제를 넓히지 않고, 나선비구경에서 무아와 윤회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주제인 윤회이론을 우리에게 친숙한 유식사상을 통해서 윤회의 주체인 에 대해서도 찾아 볼 것이다.

 

 

     相續(samtati)

진행되는 것, 그리고 과보를 받는 것은 푸드갈라(pudgala) 또는 (vijnana)이 아니고 samtati 相續이라는 것이 상속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영혼이나 정신적, 물질적 어떠한 요소도 윤회하지 않는다. 계속 진행되고 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바로 相續(samtati)이다. 그래서 상속에 따라 그 성질이 변한다. 그리고 이 상속이 있는 한 계속 진행이 되기 때문에 아트만이나 같은 윤회의 주체가 불필요하다. 따라서 무아와 윤회의 문제가 충돌하지 않는다.

 

果報는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짓는 자는 없다. 이 존재가 사라지면 다른 존재가 계속한다.(有業報而無作者 此陰滅己 異陰相續) “잡아함”13335에서 이 문제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이론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흐르는 강을 보면서 가는 자도 이와 같을까? 주야로 흘러서 쉼이 없구나! 라고 탄식한 공자의 말을 상기해보자.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른다. 인간의 삶이 흘러가는 것도 강물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상속이론이다.

 

그리고 장아함에서는 우유(milk)에 비유해서 果報의 문제도 답을 제시하고 있다. 우유는 변하여 되고, 낙은 변하여 生酥가 되고, 생소는 熟酥가 되고, 숙소는 醍醐(제호)가 된다.

 

우유가 변하여 낙이 되고 낙이 변하여 생소가 되는 계속성은 있지만, 각각이 다른 형태와 성질로 변하는 것이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불변의 주체는 없다. 그리고 술이나 물로는 같은 조건을 갖추어줘도 낙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좋은 낙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우유를 준비해야 한다. 살아 있는 생명들도 계속 반복해서 윤회하지만 윤회의 주체가 되는 아트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現生의 행위는 다음 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속이론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 그 자체로 봐도 무방하다. 이 윤회의 주체인 것이다.

 

무아와 윤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살펴본 위 세가지 방법 중에서 상속이론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상속개념(samtati)을 이해해야, 불교가 일관성 있는 사상체계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아이론은 윤회이론과 양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상속개념이 불교의 확실한 이론으로, 모두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부파불교시대에는 각 부파마다 받아드리는 이론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역사의 큰 특징 중에 하나이지만 - 이것은 금 지팡이를 20조각으로 잘라도 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듯이 - 서로 받아드리는 이론과 따르는 사상체계는 다르지만, 각 부파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을 했다. 모두다 부처의 말씀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무아와 윤회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확립하려는 시도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대승불교로 넘어가지를 못했다. 다음에는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윤회의 주체를 알아보면서 소승에서 대승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담아보자.

출처 : 코리안아쉬람
글쓴이 : aklesa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