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스크랩] 신비체험과 보편주의

할로태산 2012. 12. 3. 18:17

 

신비체험과 보편주의

 

세상에 우리가 확실하게 믿을 만한 사실이나 지식은 없다.

 

그런데 확실한 것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체험으로 경험을 했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걷는(walk) 동작의 육체물리학적인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걸을 수는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즉 자기체험이 중요하다고 한다. 걷는 것을 알고 싶으면 직접 걸어(walking)보라는 논리이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체험하지 못하는,

이른바 신비체험을 주로 기독교신자들은 영성체험이라고도 표현 한다.

영성이 깊고 낮음을 비교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영성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성을 외치는 영성주의?자들은 샤머니스틱한 한국기독교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신령스러움)이나 어떤 신비로운 체험을 강조하고,

또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체험의 세계이기 때문에, 무당()주의? 와 영성주의는 같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에 보편주의[1]는 허용되지 않는다.

 

서울 한복판에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이나,

산중에서 기도를 통해 接神을 경험한 사람들(무당류)은 모두가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

즉 체험으로 얻은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행위는 단순한 이기심의 발로(發露)가 아니다.

그러나 이기주의 보다 獨善주의가 더 바꾸기 힘든 것처럼, 위험할 수는 있다.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신비체험(mystic experience)의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1.     Ineffability 말로 표현 불가하다.

2.     Noetic Quality 이성적인 지식을 넘어선다.

3.     Transiency 체험은 순간적이고 지속되지 않는다.

4.     Passivity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받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God)을 봤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2], 과 소통할 수 있다고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인도 있다.

 

그러나 종교에서 개인적인 체험이 꼭 신비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생활 자체가 신비로 다가올 수도 있다.

 

예수나 부처도 특별한 체험을 했고 그 체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다.

이것은 그들의 체험과 설교가 보편주의를 획득했다는 뜻이다.

 

예수는 유대교라는 민족종교의 틀을 부수고, 박애라는 보편주의에 입각해서 사랑을 실천했다.

부처는 애당초 자신의 문제를 자신 속에서 풀어서, 자비라는 보편주의를 펼치면서 가르침을 행했다.

 

그래서 영성이라는 단어로, 즉 언어로 자신과 남을 속이는 위선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부정(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종교에서 신비주의는 때로는 종교의 핵심으로 다루어지기도 하지만,

그 신비가 우리의 오만과 욕망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종교의 신비주의는 한낱 미신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종교생활이 우리의 합리적 사고를 결여 시키고 독단으로 이끌어 간다면,

그것은 종교를 개인화시키는 개인에게 문제가 더 큰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믿음이나 경험을 진실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독단이라 하겠다.

 

내가 바라보는 우주는 순전히 보편주의(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객관성을 따르고 있지만,

거기에 절대성은 없다. 거기에는 충분히 보편주의를 넘어서는 또 다른 우주가 펼쳐질 수도 있다.

 

어떻게 내가 인식하는 세계와 덕순이(진돗개)가 바라보는 세계가 같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서로 바라보는 인식의 차는 있어도, 우리가 친할 수 있는 것은 우정이라는 보편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1] 이 글에서의 보편주의는 상식에 의거한 보편 타당성을 의미한다.

[2]No one has ever seen God -John-,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을 봤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반성서적인 기독교인들이다. 규정할 수 없고(무규정적), 정의 내릴 수 없는(indefinable) 존재가 하나님이다.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인 존재, 절대자가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격체로 느끼면서 진솔한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서이기도 하다.

출처 : 코리안아쉬람
글쓴이 : akles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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