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텍스트
우리가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교에 관한 자료(text)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자료들은 다름아닌 經(Sutra)이다. 경이란 부처가 한 말(說法)을 말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것들은 經藏(Sutra Pitaka)이라는 이름으로 한곳에 모여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경들을 산스크리트 계열에서는 아가마(Agama)라고 하고, 팔리(Pali)계열에서는 니카야(Nikaya)라고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가마 원본은 사라지고, 漢譯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부처 입멸 후부터 제자들에 의해 성립된 부처의 말들은, 몇 차례의 결집을 통해 정리된다.
ü 1차 결집(samgiti)
부처 입멸직후에 마하가섭의 주도로, 500명의 장로들이 부처의 말들을 인증했다.
그 인증과정은 왕사성(Rajagrha)의 칠엽굴에서 진행됐다.
多聞 第一이라고 불리는 아난다(Ananda)[1]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라고 먼저 말하고, 그 내용을 말한다. 그것을 장로들이 인정하면, 결정이 된다. (聞佛所設 歡喜奉行)
부처의 말로 결정이 되면, 그것을 다 함께 암송한다. [2]
ü 2차 결집
1차 결집 후 100년쯤 지나서 바이샬리(Vaishali)에서 700여명의 비구들에 의해서 2차 결집이 이루어진다.
經에 대한 문제는 없었으나, 律에 대해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던 것이다. 이른바 十事[5]논쟁이 그 발단이다.
이 논쟁에서 十事를 非法으로 규정한 보수세력이 상좌부(Theravadins), 그리고 十事를 옹호한 대중세력이 대중부(Mahasamghikas)로 분열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단일 교단으로서의 불교는 사라진다.(根本分裂) 근본분열 이후에는 20부파까지 분열이 되면서 部派佛敎시대가 된다.
부파불교에서 많은 부파로 나뉘어진 것을 小乘佛敎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소승집단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했고, 서로간의 다툼이나 싸움의 흔적들은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은 서로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다 같은 부처의 말을 따르는 무리라는 인식은 변함이 없었던 까닭이었다고 할 수 있다.
ü 3차 결집
인도 전체를 통일한 아쇼카왕의 후원아래 1000여명의 비구들이 빠뜨나(Pataliputra)에서 9개월간 결집을 행했다고 한다.
제1,2차 결집을 거치면서 세월도 흘렀고, 경과 율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을 論藏(abhi-dharma)[6]이라고 한다. 즉 法에 관한 논서들이다. 經에 대한 주석서들이 정립된 것이 3차 결집 때 일이다.
따라서 불교의 三藏(tripitaka), 즉 經藏과 律藏에 이어서 論藏은 이시기에 정립되었다.
ü 4차 결집
쿠샨 왕조의 3대 카니쉬카 왕은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처럼 호불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카니쉬카 왕은 불교 교단 내에 여러 부파가 있고 각 부파마다 교의를 달리한다는 것을 알고, 아쇼카때처럼 결집을 주도한다.[7]
A.D2세기 전반에 인도 북부의 캐시미르에서 500여명의 비구들이 결집을 행했다고 한다.
4차 결집이 중요한 것은, 이전에 팔리어로 암송되어 오던 부처의 설법을 인도의 고상한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팔리어는 기본적으로 문자가 없는 말(spoken language)이다.
불교의 텍스트가 이런 권위 있는 문자 산스크리트(표음문자)로 고정이 되면서, 이 텍스트는 파미르고원을 넘어 현재의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어(표의문자)로 번역되기 시작한다.
중국으로 넘어간 텍스트들은 인도 북부에서 천산북로와 남로를 통해 전해진 팔리어 계통의 니카야가 아닌 산스크리트어 계통의 아가마였다.
이후의 5차 6차 결집은 최근에 미얀마에서 이루어졌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불교 텍스트는 A.D2세기 전반에 성립한 캐시미르 아가마와 B.C1세기 중반에 성립한 스리랑카 니카야를 지칭한다.
아가마는 불경이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阿含經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니카야 즉 팔리어삼장은 리즈 데이비즈(Rhys Davids)가 19세기 후반에 발굴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아가마와 니카야를 비교 분석해보면 놀랍도록 부처의 말들이 일치한다.
다만 니카야에는 아가마에는 없는 소부(Khuddaka Nikaya)편이 들어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숫다니빳다도 니카야의 소부에 들어있는 경전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의 불교 기본 텍스트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대승경전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다음에는 텍스트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1] 부처의 사촌형제이며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다. 25년간 부처를 시봉했고, 기억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2] 인도는 역사적으로 챈팅(chanting)문화이다. 그래서 結集은 상기띠(samgiti)라는 같이 노래 부른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誦品으로 경을 끊어서 외우기 편하게 되어있다.
[3] 부처의 말.
[4] 계율.
[5] 二指浄, 金銀浄등, 열 가지 조항의 계율.
[6] 아비(abhi)는 ~에 대하여 라는 뜻이다. 즉 아비달마는 부처의 말에 대하여 라는 뜻이다.
[7] 이것은 통치자가 통치권 내에서 여러 사상이 혼재하여 있는 것을 두려워한 처사이기도 하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의 박해가 더 이상 힘들어지자,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