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인가?
- 무아론
불교에서 ‘나’라는 존재는 하나의 현상들(phenomena)에 불과하다.
거기에 실체(substance)는 없다는 것이, 그 설명이다.
부처의 무아(anatman)론은 철학적 독창성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와 구별 짓게 하는 중요한 불교의 교리임에는 틀림없다.
불교의 시작과 끝은 苦와 苦의 제거이다.
그래서 부처는 ‘나’라는 현상들의 속성에는 苦라는 깊은 뿌리가 있고, 더 깊게 탐구해서 얻어낸 경험적 사실이 무아라는 것이다.
무아는 부처의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확인이었다.
‘나’라는 존재의 현상에는, 끊임없이 변하는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이 섞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 텍스트에서는 무아론을 연기와 오온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ü 緣起(“paticca-sam-uppada”)
緣起는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인 “연(緣)해서-같이-일어난다(起)”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비참한 현실들(老死)을 추적하면, 그 원인은 태어났기(生) 때문이다. 태어나는 것은 존재(有)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들이 원인과 결과가 있고, 또 그것들은 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연기법의 설명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우리 밖의 초월적인 존재가 없어도, 모든 상황은 상호의존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가 발생하는 순서(流轉緣起 anuloma)가 苦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고,
그 반대가 苦의 원인을 제거 하는 (還滅緣起 patiloma)것이다.
그래서 각 법(諸法-12지연기)은 원인이 있어서 발생한다. 따라서 각 법은 홀로 있을 수(孤起) 없다. 이것을 諸法無我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법은 무아적인 것이다.
부처의 첫 설법인 사성제(苦集滅道)는 글자 그대로 苦의 원인(苦集 유전연기)과 苦를 제거하는 방법(滅道 환멸연기), 즉 연기법을 쉽게 풀어서 말한 것이다.
ü 五蘊 (panca-skandhas)
불교의 ‘나’라는 현상에는 정신과 육체 그리고 그것들을 넘어선 어떤 것(해탈)을 상정한다.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의 요소가 어우러져서 임시적으로 모여있는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오온의 설명이다.
色 rupa 육체 – 물질적인 요소.
受 vedana 수동적인 느낌. (sensation), -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느껴지는 감각.
想 samjna 개념적인 구성. (perception) - 느껴지는 감각을 생각하는 것.
行 samskara 의지작용, 형성작용, (volition) – 생각을 행동하는 것, 즉 반응.
識 vijnana 인식작용, 식별작용, (consciousness) – 감각기관과 그 대상들이 만나서 생기는 것.
위 각 요소들은 육체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각 요소들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정신현상은 감각기관 없이는 일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오온의 가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고정불변한 실체를 거부한다. 모든 것이 일어 났다가 사라지는 파동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불교에서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불교가 부정하는 것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실체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존재에 대해서 두 개의 표현방식을 갖고 있다.
世俗諦(samvrti-satya)와 勝義諦(paramartha-satya)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