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불교이야기

할로태산 2012. 12. 3. 18:26

불교 이야기

 

불교란 부처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책인 불경들을 살펴 보면, 그 자료들은 실로 방대하다.[1]

많은 논사들이 지은 논장들, 그리고 다른 문자권으로 번역되면서 생기는 異譯[2]들이 합쳐졌다.

따라서, 부처 이후 약2500년의 역사 속에서, 불교는 복잡다단해졌고, 각 문화권에 토속화되었다.

 

그러나 불교를 불교답게 유지시켜온 일관성이 변질된 것은 아니다.

불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불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몇 개로 압축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漢字불교의 영향으로 불교를 어렵게 받아드릴 수 있다.

부처의 땅, 인도의 현재나 과거의 언어들은 우리 한국말처럼 소리글이다.

그러나 중국어는 단음절의 뜻글자(Monosyllabic language)이며, 성조(Tonal language)가 있다.

따라서 중국의 언어체계와 중국의 선진문명[3]이 합쳐지면서, 중국은 불교를 중국화()시켰다.

 

그러나 중국이 자국의 문화에 맞춰 불교를 이해했다고 하지만,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를 퇴색시킨 것은 아니다.

 

 

불교의 기본 자료(text)를 살펴보면,

부처의 가르침은 [4](duhkha)로부터의 자유라고 정의 내려진다.

따라서 불교의 모든 것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하나의 초점에 맞춰져 있다.

부처(Buddha)는 모든 것이 괴로운 상황(sarvam dhukahm)[5] 에서 자유로워 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가르쳤다.

부처의 방법이란, 우선 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텍스트에서는 의 원인을 다시 분류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그 원인은 인간의 욕망이다.

결국 욕망이 없으면 도 없다.

그리고 이 욕망에도 원인이 있다.

 

욕망이 원인은 가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가 있다는 생각이 의 뿌리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를 철저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를 알아본 결과 라는 것은 고정불변하는 실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요소가 임시적으로 모여서 이루어진 실체가 없는 존재, 즉 무아적인 것이었다.

 

우리들의 존재가 무아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드린다면, 더 이상 어디에도 집착을 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우리의 욕망도 사라지게 된다.

욕망이 사라지면 도 사라진다.

 

에서 해방이 되면 더 이상 업(karman)을 만들지 않게 되고, 그러면 윤회의 굴레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오늘은 불교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부처는 불교를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확인이라고 설명한다.

다음에서는 부처가 확인한 무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1] 그리스도교의 신약27편은 불교에 비교해 보면, 실로 간단한 문헌이다.

[2]이역-산스크리트 원문 텍스트가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에 중복되어 번역되는 것.

[3] 선진시대,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의 오랜 역사를 가린킨다.

[4] 부처가 말한 두카(dukkha)(suffering)로 단순 번역해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두카의 반대어는 아니다. 두카의 범주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두카의 반대어는 산티(santi, nirvanam santam 평화)가 된다. 우리 존재의 한계상황을 총칭해서 라고 표현했고,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을 두카라고 했다. 無常(anicca)한 현실이 곧 것이다.

[5] 一切皆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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