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氣論
太一生水와 太極圖說
인간이 우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우주론(cosmology)이다. 인간이 사유(思惟)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하고 포괄적인 형이상학(meta-physics)체계이다. 현대에는 물리학(physics)에서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주염계(周濂溪, 1017~1073)는 太極圖를 도식적으로 그려서 설명을 붙여놓았다(太極圖說). 여기에서 新儒學의 출발되었고, 주자학의 대표적인 개념인 理氣論이 시작된다. 따라서 중국의 우주론은 太極圖說에 집약되어 있다.
태극도설은 불교의 형이상학이나 도교의 신선사상을 위시한 先秦문명과, 우주발생론(cosmogony)까지 포함하고 있다.
태극도설 이전의 역사에서 우주발생을 논한 문헌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考古學의 발달 덕분에 분묘에서 竹簡[1]이 출토 되었다. 이것은 약 2400년 전의 문헌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의미한다. [2]
죽간의 丙본은 선진문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우주발생론이 적혀져 있다. 그것은 ‘太一生水’라는 문장으로 시작이 된다.
太一生水,水反輔太一,是以成天。
태일이 물을 낳고, 물은 반대로 태일을 도와 이로써 하늘을 이루었다.
天反輔太一,是以成地。
하늘이 반대로 태일을 도와 이로써 땅을 이루었다.
天地復相輔也,是以成神明。
하늘과 땅이 다시 서로 도와 이로써 하늘과 땅의 정령(신명)을 이루었다.
神明復相輔也,是以成陰陽。
하늘과 땅의 정령이 다시 서로 도와 이로써 음과 양을 이루었다.
陰陽復相輔也,是以成四時。
음과 양이 다시 서로 도와 이로써 사계절을 이루었다.
四時復相輔也,是以成熱。
사계절이 다시 서로 도와 이로써 뜨거움을 이루었다.
熱復相輔也,是以成濕燥。
열이 다시 서로 도와 이로써 습하고 건조함을 이루었다.
濕燥復相輔也,成歲而止。
습하고 건조함이 서로 도와 한 해를 이루고 그치었다. (우주의 발생이 종료)
출처 - 다음 카페 “형설회” 한경호님
이기론 속의 우주론을 살펴보려면, ‘태일생수’와 ‘태극도설’을 비교 분석해야 한다.
태극도설의 우주발생론을 보면, 無極에서 太極으로, 太極에서 動靜으로, 動靜에서 陰陽으로, 陰陽에서 五行으로, 五行에서 四時(사계절)로, 이렇게 만물이 생겨나고 결국은 無極으로 돌아 간다.
출처:http://blog.naver.com/bhjang3/140035899047
無極이 太極이고, 太極이 움직여서 陽을 낳고, 움직임이 極에 달하면 靜해지고, 靜이 陰을 낳고, 靜이 極에 달하면 다시 움직이고, 한번의 움직임과 한번의 靜이 서로 뿌리가 된다.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基根)
『주역』의 『계사』 上편에서는
一陰一陽謂之道(한번 陰했다가 한번 陽하는 것을 일컬어 도라고 한다.)라고 했다. 즉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우주를 설명한 태극도설처럼, 『주역』에서도 궁극적인 진리인 道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태일생수’의 太一과 ‘태극도설’의 太極은 같은 위치에 있다. 움직임이 없는, 陰陽 이전의 상태가 太極이다. 朱子는 太極을 理라 했고, 陰陽을 氣라고 했다. 여기에서 비로소 理와 氣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朱子學이라는 근세철학이 태동하는 것이다.
朱子는 주렴계의 태극도설에서 우주의 질서와 더불어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적 원리(Moral Principle)를 주창한 것이다. 따라서 朱子는 原理의 理와 세상을 구성하는 역동적인 모든 것을 氣라고 했다.
理氣論은 宇宙論과 더불어 人性論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것은 우주발생과 인간 본성의 문제는 결코 분리시킬 수 없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다.[3]
朱子가 도덕과 원칙적인 인간의 삶을 강조하기 위해서 理氣論을 설파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중심으로 자부하는 중화문명의 확실한 문화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理氣論을 연구하면서 그 방대하고 섬세한 논리에 놀랐다.
앞으로는 간단한 연구노트가 아닌,깊이 있는 연구를 해볼만한 충분한 가치를 발견했다.
한국문화에서 儒學이 주는 메시지는 실로 거대한 것이다. 아직도 유교의 전통이 남아있는 유교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에 휩쓸려 우리 고유의 문화를 경시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고 사는 것이다.
‘역사와 나’의 연구가 갖는 가치는 선조들의 일구어낸 값진 교훈을 내 것으로 승화시키는데 있다 하겠다.
